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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묻느냐.”
녹음기를 켜려는 서른세 살 손녀를 앞질러, 아흔 살 할머니가 첫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민금순은 손녀 마거릿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금테 안경을 걸친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었다. 냉담해 보일 정도로 무표정한 할머니를 처음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던 두 살 무렵 기억이 마거릿을 스쳤다. 가르마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고 남김없이 빗어 내려, 젖은 조약돌처럼 반들반들하게 윤을 낸 뒤 쪽 진 머리도 여전했다. 넓게 펼쳐지는 회색 치마를 입고 방석 위에 꼿꼿하게 앉은 모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습은 바위 같이 보였다.
애당초 민금순은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 손주를 돌보러 아들 집에 잠시 머물던 무렵에도, 누가 불러도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다. 이웃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면 퉁명스레 빗자루로 내쫓고, 손주에게 저녁으로 된장찌개를 끓여줄 뿐이었다. 마거릿이 다치
신천지릴게임 거나 했을 때에야 간신히, 어렴풋한 애정이 얼굴에 감돌았다. 서울에 사는 할머니를 인터뷰하겠다며 한국행 비행기표를 살 때부터 아버지 이은설은 경고했다. 자기 아버지에 대해 평생토록 물었지만 할머니가 조개처럼 완강히 입을 다물었다고.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갓난아기였을 때 죽었다. 감옥에서 돌아와 아들 둘을 낳았지만 시름시름 앓다 곧 죽었다. 집안에서 할아버지는
릴게임종류 전과자였고, 미스터리였다.
마거릿 주혜 리 씨가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 이철하씨의 기록이 담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2000년 할아버지의 수사 기록과 행동평가 보고서 등이 담긴 자료집을 한국에서 확보했다. ⓒ김인정
릴게임신천지 고통 앞에서 침묵하는 게 일종의 가족력이라는 걸 마거릿은 눈치채고 있었다. 고통을 말없이 통째로 삼키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때까지 억누르는 방식이, 세대를 걸쳐 타고 내려가며 썩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게, 이 가족의 전통적 방어기제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침묵을 야속해했지만, 자신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고
바다이야기오리지널 통에 대처했다. 아버지는 감정표현이 적고 조용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아비 없는 자식”이라 불리며 학교에서 얻어맞고, 일본 천황의 생일 행사에서 살짝 움직였다고 교장과 교사들에게 구타당하던 유년기에 “늘 외국인처럼 느꼈다”라고 기억했다. 반정부 활동으로 자기 아버지가 투옥됐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았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기록을 다 태워버린 것도 상처였다.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않았다. ‘전과자의 아들’이라는 낙인과 그로 인한 수치심, 엄혹한 시대 상황이 고루 조금씩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된 듯 쾌활한 모습을 보인 건 60대가 다 되어,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는 걸 스스로 조사해 확인하고 난 뒤부터였다. 조국에서 오래 잊힌 그의 삶을 탐구해 애국지사로 조명받게 했을 때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짧은 활기는 그러나, 불타버린 기록들을 한국에서 다시 찾겠다는 평생의 소원이 건강 문제로 수포로 돌아가며 무거운 침묵 속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이 침묵에서 아버지를 꺼내기 위해, 마거릿은 할머니의 침묵부터 깨뜨려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마거릿은 서울의 단출한 아파트에 도착해 민금순 앞에 앉아 있었다. 민금순은 자식들에게 죽은 남편에 대해 말하는 걸 꺼렸다. 남편의 서류와 유품은 6·25 전쟁 당시 자기 손으로 불태워버렸다. 민금순을 스물일곱 살 과부로 만들고 떠난 남편이었다.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잊으려고 노력했다. 무덤에 찾아간 적도 없다. 거의 60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할 때도, 안장식에 가기를 거부했다. 남편에 대해 언급한 거라곤 “죽은 남편 옆엔 묻히지 않겠다”라고 뱉은 게 고작이었다. 고집과 기세라면 그러나, 마거릿도 만만치 않았다. 할아버지의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려고 현대 한국사를 배웠다. 도서관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자료를 뒤졌다. 기나긴 질문지를 만들었다. 열네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물러설 수 없었다. 할머니는 아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다. 그 지점을 공략하자. 미동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마거릿이 대꾸했다. “할머니, 제 직업이 기자잖아요. 할아버지의 잃어버린 역사를 연구하는 책을 쓰라고 연구 지원을 받았어요. 할머니는 살아계신 분 중 할아버지를 가장 잘 아는 분이고요.”
1934년 민금순씨가 큰아들 은설을 안고 있는 모습. ⓒ마거릿 주혜 리 제공
할머니는 손녀가 ‘일’이라고 말하자 가까스로 납득했다. 다만 인터뷰를 하려면 일단 아들인 은설이 없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버지가 방에서 나갔다. 할머니, 마거릿, 그리고 통역을 해줄 마거릿의 엄마만 방에 남았다. 할머니가 눈에 띄게 편안해하는 게 보였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조금 더 기다리자, 60년이 넘게 이어진 완고한 침묵이 마침내 깨졌다. 그토록 열망했지만 여자라서 허락되지 않았던 교육, 고작 열여섯 살에 한 중매결혼, 결혼식 당일까지 만난 적도 없던 한 살 어린 남편, 집안일을 몰라 얻어듣던 시댁 잔소리, 하인들과 부엌에서 먹던 밥, 유일하게 즐거운 일이었던 버선 바느질. 평생 가족들을 먹여 살리게 한 기술인 바느질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많아지고 빨라졌다.
이념은 몰라도 생존은 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마거릿이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할아버지에 대해선 깡그리 잊고 있었던 것마냥 할머니가 멈칫했다. 공부하느라 바빴던 남편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났고, 말을 거의 나누지 않아 잘 알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진정한 대화를 나눈 건 항일운동을 하던 할아버지가 감옥 독방에 갇힌 뒤였다고. 일단 말을 시작하자, 초월적인 의식 상태에 들어가기라도 한 듯 할머니는 멈추지 않고 독백을 쏟아냈다.
1950년 8월 어느 날이었다. 이튿날이면 소백산 깊숙한 곳으로 피난을 떠나야 한다. 북한군이 그들을 찾아오지 못하도록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깊이깊이 숨어야 하는 건 홀로 남은 민금순이다. 큰아들 은설을 시켜 부엌 흙바닥에 땅을 파게 하고 세간살이를 숨긴다. 가족을 먹여 살리던 싱거 재봉틀도 분해해서 검게 빛나는 부품들을 차곡차곡 포갠다. 여름의 해는 길어 땅은 느지막이 식고 밤은 더디게 온다. 아이들이 잠들자 민금순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수감되었던 열아홉 살 이철하에 대한 서류, 서울에 있던 동지들과 주고받은 편지, 검은 책등에 금빛으로 이름이 아로새겨진 마르크스의 책, 갈색 잉크로 남편의 이름 ‘이철하’가 적힌 책들. 알아들을 수 없던 남편의 언어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모두 태운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반공주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념도 정치도 민금순의 삶엔 없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남편의 흔적이 전쟁통에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건 안다. 북한군에게 이 자료를 넘기고 이익을 보자고 권하는 기회주의자 친척이 이 자료에 손대는 것도 싫다. 역사는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고 불확실성에 기댈 생각은 없다. 이념 뒤의 철학은 몰라도 생존에 대해선 안다.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다른 건 중요치 않다. 그동안 밤낮없이 동네에서 옷을 수선하고 농작물을 팔아 홀로 고생스레 길러낸 아이들이다. 남에게 돈을 꾸는 한이 있어도 잘 키우려 했다. 남편이 수감된 뒤로 가문에 주홍글씨라도 새겨진 듯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며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감옥에서 나와 시름시름 앓더니 20대에 죽어버린 남편. 남은 삶을 홀로 감당하게 한 게 원망스럽다. 일제강점기를 지났더니 이젠 전쟁이다. 또 살아남아야 한다. 낮 동안 아이들을 먹여 살릴 옥수수를 찌던 아궁이에 책을, 문서를 던져 넣는다. 타오르는 남편의 유품을 보는 민금순의 얼굴은 침착하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민금순도 일본 식민당국을 증오했다. 창씨개명을 오래 하지 않았고 일본어도 전혀 배우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뜻 모르고 뱉은 ‘독립’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아이가 남편처럼 위험에 처할세라 엄하게 입단속했다. 장남 은설은 진지하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열다섯 살 아이에 불과하다. 하루 종일 삽질을 하느라 애를 먹었을 테다. 은설이 앳된 얼굴을 미처 감추지 못한 채, 불기운에 땀을 흘리며 자는 걸 민금순은 바라본다. 아궁이에 재가 산처럼 쌓인다. 재가 아궁이에서 넘쳐 아궁이 밖까지 흘러나온다.
마거릿은 할머니가 가족의 중요한 자료를 몽땅 불태운 게 끔찍하다고 생각해왔다. 아무튼 과거 따위는 보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질문을 던지며 관심과 경청의 자리로 이끌자, 할머니는 몸 밖으로 모든 이야기를 끄집어내듯 과거를 헤집고 다녔다. 눈이 감겨가고 몸이 지쳐 그만 이야기하라고 말릴 때까지 얘기했다. 세 번째 인터뷰에선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입을 더 열었다. 감옥에서 있었던 일들을 왜 한 번도 얘기하지 않는지 묻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했다. 마치 인터뷰 초반 할머니처럼, “왜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말하고 싶겠소?” 애국지사의 짧은 삶은 저항정신과 지적 교류, 이념과 신념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상주의자 이철하가 놓쳐버린, 생존의 넌더리 나는 부분은 민금순이 맡았다. 재봉사로 일했다. 친구의 고아원 운영을 도왔다. 질병이 난무하는 시대를 통과하며 아이들을 수호하려 안간힘을 썼다. 있는 줄도 몰랐던 강인한 생존 본능이 드러났다. 이철하가 남기고 간 가족들을 책임지고 가문의 수장 역할을 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반역자’ ‘공산주의자’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딱지가 민금순에게 따라붙었다. 녹록지 않은 인생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긴 침묵이, 해방 뒤에도 친일파들이 고위직을 차지하는 걸 보며 쭉 이어진 것 아닐까 추측했다. 국가가 남편의 명예를 회복해주기까지는 60년 가까이 걸렸지만, 민금순 안에서 남편의 기억은 여전히 태우고 지워야만 살 수 있는 종류였다. 인터뷰 말미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결혼에 관심 없었고 민족주의 운동과 정치에 훨씬 관심이 있었다고 자신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고 말하곤 말을 멈추었다. 그 말은 한이 되었을까. 마거릿은 녹음기를 꺼야 할 때란 걸 알았다. 나중에 추가 인터뷰를 하자며 마무리했다.
마거릿이 자라면서 몰두한 게 있다면 음악이었다. 휴스턴의 뉴웨이브 댄스 클럽에 다니며 주로 게이 친구들과 어울렸다. 남과 달라 안전하지 않게 느낀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미국에서 태어나 휴스턴에서 자랐지만, 백인 중심 사회에서 마거릿은 거의 매일 외국인 취급을 당했다. 사람들은 자꾸만 ‘진짜로’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확인하려 했다. 당시 그곳 사람들에겐 한국이란 나라는 존재감이 없다시피 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역사를 모른다는 사실은, 자신의 문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압도적인 감정의 일부였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거의 알지 못했기에,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미국 내 한인 주류 문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부모를 따라 잠시 방문한 한국도 낯설기만 했다. 어디에서도 ‘진정한 집’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내가 ‘진짜로’ 어디에서 왔냐면
할아버지의 사라진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은, 마거릿의 오랜 방황에도 해갈이 되어주었다. 기억도 잃어가고 말도 잃어가던 아버지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적어 보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읽는 일부터가 마거릿에겐 정체성의 빈칸을 채우는 작업이 되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될수록,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더 잘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 여름 아침, 땀에 끈적해진 채로 잠에서 깼을 때, 한밤중에 느낀 찝찝한 열기가 자기 아버지의 기록을 전부 태운 불에서 나온 것이란 걸 알게 되곤 얼마나 황망했는지를 고스란히 느꼈다. 할아버지의 기록을 찾는 일이, 마거릿에게도 남은 퍼즐을 맞추는 일이 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이철하는 일본 천황 추도식에서 항일 시위를 조직한 학생 운동가였다. 검은 완장 대신 조선식 상복을 입어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교장에게 제국주의적인 태도를 반성하라고 서신을 보내 퇴학당했고 충남 공주 최초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었다. 독립운동가인 김복진 조각가에게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를 접했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나중에야 이철하가 빨치산 총사령관이 된 이현상의 동지라는 단서를 발견했지만, 정부 기록물 관련 기관과 대학을 뒤져도 자료가 없었다. 사설 출판사의 사본 형태로 겨우 확보한 7권짜리 두툼한 자료 안에서 이철하가 서대문경찰서에서 받은 수사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아버지 은설처럼, 이철하가 “밝고 온화하며 학구적이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는 행동평가 보고서도 있었다. 그는 동지들과 소통하기 위해 스파이처럼 비밀 암호를 고안하고, 감옥에서 철학과 정치경제학·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한 책을 읽던 청년이었다. 마거릿은 부모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 자신의 반체제적인 기질, 이상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어디에서 온 건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고립감과 소외감은 계보를 알게 되며 잦아들었다.
이철하 선생과 민금순 여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함께 묻혔다. ⓒ마거릿 주혜 리 제공
1933년 감옥에서 출소한 뒤 이철하 선생의 사진. ⓒ마거릿 주혜 리 제공
마거릿이 할아버지 이철하의 훈장과 국가유공자증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고 이은설씨는 아버지 이철하에 대해 조사한 뒤, 아버지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고 애국지사로 조명되도록 도왔다. ⓒ김인정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은 국민적 부채감을 남기는 씁쓸한 통념으로서 회자되곤 한다.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 대다수가 영광보다는 빈곤을 떠안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 비해, 여러 이유로 국외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디아스포라 문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가족과 후손들이 어떤 삶을 견뎠는지도 큰 조명을 받지 못한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후손을 찾지 못해 서훈을 전달하지 못한 경우도 2024년 기준 40%에 달한다. 당시 기록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어떤 후손들은 선조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모른 채 역사적 단절을 경험한다. 가문의 수치와 비밀처럼 감춰져 있던 독립운동가 이철하의 이야기를 미국에 사는 후손들이 제 손으로 파헤쳐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을 기약했던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마지막 인터뷰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금순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석 달간 끈질기게 버텼지만 세상을 떠났다. “네 할아버진 조국을 위해 뭔가를 했지만 죽었을 땐 그저 젊은 청년일 따름이었지. 그 짧은 생을 할머니의 긴 삶과 비교할 순 없다. 죽은 사람은 고통받지 않아. 살아남아야 했던 쪽은 할머니였다. 우리 가족들에겐 네 할머니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었다”라고 종조부가 마거릿에게 말했다. 할머니의 관도 할아버지의 관처럼 태극기로 감싸인 채 안장되었다. 도열한 군인들의 거수경례가 있었다. 민금순은 죽기 몇 달 전, 아흔한 살 생일에야 아들 부부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국립묘지에 있는 남편 옆에 묻어도 된다.” 깊은 앙금이 다 풀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철하와 민금순의 이름은 국립대전현충원 묘비에 나란히 새겨졌다. 두 봉분에서 돋아난 푸른 잔디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사라진 역사를 추적하는 책을 쓰려는 마거릿의 계획은,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기르며 20여 년간 미뤄졌다. 지금 돌이켜보자면 당시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는, 이성적이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려면 뿌리를 내린 적이 한 번도 없던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할아버지 삶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 자기 아이들을 만나는 일과 불가해한 방식으로 얽혀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 역시 유연하게 확장되었다. 어머니가 되는 경험을 통해 할머니를 천천히, 끝내 이해하게 되었다. 불태운 역사와 맞바꾼 가족의 생존 위에 자신과 자녀들이 살아 있었다. 남편이 자기 삶을 망쳤다면서도, 강인하게 끝까지 살아남아 가문의 300년 족보에서 가장 오래 산 인물이 된 할머니. 조국이 마침내 할아버지를 돌아보고 인정했을 때조차 그녀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잊고 증오했다. 그게 고통을 견디는 방어기제이자 생존 메커니즘이었다고 마거릿은 믿는다. 권력을 쥔 적도 조명을 받은 적도 없이 다만 살아남으려 했던 일상의 여성들. ‘성야(별이 빛나는 들판)’라는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당시 가명을 제목으로 한 책 〈Starry Field: A Memoir of Lost History〉(성야: 잃어버린 역사의 회고록)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를 지지하는 큰 기둥을, 마거릿은 할머니의 삶과 언어로 세웠다. 자신이 자랄 때 가지지 못했던 가족의 역사를 누구도 지우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샌프란시스코·김인정 (논픽션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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