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벤자민씨가 직접 쪽염색 작업을 했다. 흰 원단에 쪽빛을 입혔다.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 제공
[편집자주] 이직이 흔한 시대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한 직장에서 계속 근무한 사람은 10명 중 4명에 그쳤다. 특히 MZ세대(1980~2000년대생)는 안정성보다 성장 가능성과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며 직장을 옮기는 데 주저함이 적다. 이런 시대에 이동 대신 한 우물을 택한 젊은이들이 있다. 속도보다 깊이, 유행보다 숙련을 선택한 ‘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백경게임 지난달 19일 전라남도 나주에서 만난 미국인 벤자민 캐머라타(23)씨는 염색장 전수생이다. 그는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에서 쪽염색을 배우고 있다. 사진에서 캐머라타씨가 들고 있는 보자기는 최근 제작한 작품이다. 직접 염색한 직물을 하나하나 바느질해 만들었다고 한다.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 제공
릴게임바다이야기 전남 나주의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 벤자민 캐머라타(23)씨가 흰 천을 항아리에 담긴 쪽물에 깊숙이 담갔다가 꺼냈다. 물기를 짜낸 뒤 천을 널자, 살랑 바람에 춤추는 천은 이내 쪽빛을 가득 머금었다.
캐머라타씨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자라 하버드대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대도시 직장을 택하는
야마토게임연타 대신 졸업 직후인 지난해 6월 한국행을 선택했다. 쪽염색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인디고 색을 좋아하던 그는 전통 섬유 공예에 매력을 느꼈고, 쪽염색을 배울수록 마음이 깊어져 결국 전수생이 됐다.
한국계 미국인인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전통 작업을 하면 조상과 교감할 수 있다”는 캐머라타씨에게 쪽염색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릴게임하는법 삶을 몸으로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현재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으며 나주 지역의 전통 쪽염색 공정을 기록하고 있다. 염색 과정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생태, 장인의 작업 환경까지 사진과 글로 남겨 영어 안내서로 정리하는 것이 목표다. 쪽염색을 영미권 등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다음은 캐머라타씨와의 일문일답.
백경릴게임 지난달 29일 캐머라타씨가 직접 쪽염색 작업을 했다. 흰 원단에 쪽빛을 입혔다.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 제공
―한국의 쪽염색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생물학을 공부하다가 전통 직물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전통 섬유 예술의 아름다움을 처음 실감했다. 이후 각 나라 전통 직물을 조사하다가 한국의 쪽염색을 알게 됐다.”
―생물학이란 전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염색은 결국 식물과 발효, 환경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박테리아와 자연 조건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느끼지는 않았다.
친구들 대부분은 뉴욕 등 대도시로 가서 빅테크 등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을 구했다. 하지만 인생은 길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겠지만, 쪽염색 기술은 지금 배우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걸 선택했을 뿐이다.”
지난달 29일 캐머라타씨가 직접 쪽염색 작업을 했다. 쪽빛을 입힌 원단을 건조하면 염색이 이뤄진다.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 제공
쪽염색은 크게 쪽잎에서 색소를 추출하는 과정과 섬유에 색을 입히는 과정으로 나뉜다. 두 과정 모두 기다림이 필수다. 발효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쪽잎과 줄기를 항아리에 넣고 물에 담가 삭히면, 일주일쯤 뒤 옥색의 쪽물이 나온다. 여기에 조갯가루를 넣고 저으면 흰색과 청색, 자줏빛으로 변한다. 하루 정도 두면 침전물인 ‘쪽죽(니남)’이 생긴다. 여기다 다시 잿물을 붓고 휘젓는 작업을 두 달 가까이 반복해야 비로소 우리가 떠올리는 파란 쪽물을 완성된다.
염색 과정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쪽물에 천을 담가 주무르고 널기를 반복한다. 녹색에서 청록색으로, 다시 파란색을 거쳐 쪽빛으로 색이 변한다."
―한국의 쪽염색과 다른 나라의 염색의 차이는.
“발효다. 곧바로 색을 고정하는 일본이나 인도의 인디고 염색과는 공정 자체가 다르다. 한국의 발효 문화는 굉장히 독특하다. 옹기를 사용하고, 온돌을 활용해 겨울에도 박테리아를 유지한다. 얼마나 발효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쪽염색은 사람의 시간과 삶이 녹아있다. 쪽염색만의 인문학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 지루하지는 않나.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조상의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전 세대와 연결되는 감각도 있다.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작업하는 경험은 흔하지 않다.”
―조각보나 보자기 작품도 만든다고.
“놀라웠다. 이렇게 오래된 섬유 예술이 색과 구성에 따라 굉장히 현대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익명의 작품이라는 점도 미국의 퀼트(Quilt) 문화와 닮아 있다.”
그래픽=손민균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쪽염색을 전승받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풀브라이트 재단을 찾았다. 재단은 ‘왜 한국 시골에서 이걸 배우려고 하냐’며 의아해했다. 보통은 대학이나 병원에서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재단은 A학점을 받아오면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다행히 학점을 맞춰 풀브라이트 재단의 ‘한미교육위원단’ 프로그램 중 개방형 학습·연구 장학금을 받아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나주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외국인들이 떠올리는 한국은 대개 대도시와 K팝이다. 하지만 그건 한국의 일부다. 어머니가 들려주던 한국은 더 시골에 가깝고 자연이 많았다. 나주는 산과 물이 가까이 있고 평화롭다. 내가 상상하던 한국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쪽빛은 짙은 푸른색을 뜻한다. 화학 염색과 달리 쪽을 발효하는 과정을 거쳐 색소를 만들고 원단에 입힌다. /염색장 정관채 전수교육관 제공
―염색장 전수생으로서 목표는.
“나주 지역의 역사와 생태, 염색의 작업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있다. 쪽염색에 대해 영어 안내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외국인들이 한국 쪽염색을 접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이런 기술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언젠가 미국에서 쪽염색을 가르치거나 소개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쪽을 직접 기르기도 하면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전통을 이어가려는 이유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는 기록하고 배우고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하지 않으면, 이 아름다운 쪽빛도 언젠가는 사라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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