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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정전’, 즉 전쟁이 멈춘 것일 뿐 공식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자 인류 역사에서 세 번째로 큰 피해를 낸 전쟁이죠. 국군 13만 7천 명 전사, 유엔군 4만 명 전사, 민간인 24만 명 사망, 전쟁미망인 30만, 전쟁고아 10만명, 그리고 김일성 정권에 끌려나온 북한군, 중공군의 인명피해는 이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침이 가까와질수록 수없이 많은 경보음이 울렸습니다. 이상한 것은, 수많은 경고들이 무시됐고 오히려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스스로 안보태세를 허무는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1950년 그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조선일보 유튜브 '호준석의 역사전쟁'
2차대전 동맹국이던 미국과의 정면대결을 피하기 위해 김일성의 남
바다이야기APK 침계획을 승인하지 않던 소련 스탈린은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뚱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중국 대륙을 장악하자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김일성은 마오쩌뚱이 내전에서 승리하면 한반도 공산화를 돕기로 했다고 스탈린을 설득했고, 스탈린은 마침내 1950년 2월 9일 남침을 승인합니다.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는 것을 막아야 했고, 유럽에서는 유럽 공산화를
골드몽사이트 막기 위해 나토를 창설한 미국의 힘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한반도에서 미중이 충돌하면 스탈린에게는 일거양득이었습니다.
50년 2월 이후 소련의 탱크,대포,탄약,석유가 북한으로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했습니다. 38선 주변 북한 주민들은 후방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3월 10일 일본 점령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6월에 북한이
온라인야마토게임 남한을 침략한다는 정보를 획득했다’고 워싱턴으로 보고서를 보냅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5월에서 6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했고, 2월 위기설, 3월 위기설, 4월 위기설이 시중에 파다했습니다.
스탈린은 마침내 1950년 2월 9일 남침을 승인합니다. 스
알라딘게임 탈린은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는 것을 막아야 했고, 유럽에서는 유럽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나토를 창설한 미국의 힘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한반도에서 미중이 충돌하면 스탈린에게는 일거양득이었습니다./조선일보 유튜브 '호준석의 역사전쟁'
3월 20일부터 4월 25일까지 김일성과 박헌영이 소련에 가서 스탈린에게 3단계 작전지침을 받습니다. 첫째, 38선 부근으로 공격부대를 집결시켜라, 둘째 평화통일에 대한 대남 제의를 하고 남측이 거부하면 옹진반도에서의 한국군 움직임을 구실삼아 공격하라, 셋째, 전선은 신속히 확대하고 남측이 전면전으로 반격할 기회를 주지 마라.
김일성과 박헌영은 이어 5월 13일 마오쩌뚱에게 찾아갑니다. 의심 많은 마오쩌뚱은 스탈린으로부터 ‘남침을 승인한 것이 맞지만 최종 결정은 중국에 맡긴다’는 내용의 전문을 14일에 받은 뒤에야 ‘미군 참전시 중국도 파병하겠다’고 김일성에게 약속합니다. 공산세계 내밀한 막후에서 벌어진 이 일들은 1994년 6월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한 300여 종의 극비문서를 통해 44년이 지나서야 드러난 사실입니다. 이 전까지 남한 좌파 상당수 학자들은 끈질기게 6.25 북침설을 주장했습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이어 5월 13일 마오쩌뚱에게 찾아갑니다. 의심 많은 마오쩌뚱은 스탈린으로부터 ‘남침을 승인한 것이 맞지만 최종 결정은 중국에 맡긴다’는 내용의 전문을 14일에 받은 뒤에야 ‘미군 참전시 중국도 파병하겠다’고 김일성에게 약속합니다. /조선일보 유튜브 '호준석의 역사전쟁'
중국에서 돌아온 뒤 김일성은 스탈린의 지침 그대로 위장평화공세에 나섭니다. 6월 7일 ‘평화적 조국통일 호소문’을 내고 6월 15일부터 17일까지 ‘남북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대표자회의’를 열어 8월 5일부터 8일까지 남북 총선거를 하자고 제의합니다.
그러나 북한 전역과 38선 부근에서는 남침 준비가 속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유엔 한국위원단 현지 감시반은 6월 9일부터 동쪽 강릉에서 서쪽 옹진반도까지 38선 전역 순회를 시작합니다. 그 결과, 북한군이 38선 인근으로 이동했고 옹진반도 북쪽에서 군사활동이 증대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전쟁 하루 전인 6월 24일 유엔 안보리에 제출합니다.
김일성의 가짜 평화공세는 계속됩니다. 6월 10일 자신들이 억류한 민족 지도자 조만식 선생과, 체포된 남로당 거물 김삼룡,이주하를 교환하자고 제의합니다. 우리 정부는 김삼룡,이주하를 개성과 사리원 중간 여현까지 호송해 갔지만 북한은 이런저런 구실을 붙이면서 지연시켜 6.25 남침 때까지 결국 응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강릉 8사단장 이형근 준장이 서해 해상으로 침투하던 인민군 유격대 공작원들을 붙잡아 조사한 결과 ‘인민군의 전쟁 준비가 완료됐다. 전시 체제를 갖추고 인민군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채병덕 총참모장에 보고합니다. 그러나 이 보고는 묵살당합니다. 이형근 준장은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내고 부대를 떠났다가 이종찬 장군의 설득으로 복귀합니다.
6·25 직전 군내에선 북한이 대규모 도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첩보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채병덕 총참모장은 "인민군은 절대 도발하지 않는다"며 묵살합니다./조선일보 유튜브 '호준석의 역사전쟁'
같은 날, 채병덕 총참모장은 오히려 사단장과 연대장 대부분을 교체하는 초유의 인사이동과 대대적인 군부대 이동을 실시합니다. 6.25 남침 불과 보름 전이었습니다. 전방 4개 사단 가운데 원주 6사단 , 의정부 7사단 , 강릉 8사단 등 3개 사단장이 교체됐습니다. 혼자 유임된 문산 1사단장 백선엽도 참모학교 교육 중이어서 전쟁이 터졌을 때는 부대에 없었습니다. 인사이동으로 경계태세는 흐트러졌고 신임 사단장들은 임명 날짜보다 늦게 부임하기도 했습니다. 2연대는 부대 이동명령으로 수도사단에서 춘천 6사단으로 예속돼 서울에서 홍천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전쟁이 발발했고 의정부 7사단의 예비연대인 25연대도 갑작스런 이동 명령에 온양에서 출발해 의정부에 도착 전이라 7사단은 예비연대도 없는 상태에서 북한군 주력부대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6월 16일 김일성은 6월말 개전에 대한 스탈린의 최종 승인을 받고 남침 날짜를 25일 일요일로 정합니다. 더 늦어지면 기밀 유지가 어렵고, 7월은 장마라서 부대 기동에 제한이 있으며, 일요일에 기습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 25일을 고른 이유였습니다. 이날부터 하루 10km씩 진격하면 부산까지 50일이면 도달해 8.15 해방 5주년 행사를 부산에서 김일성이 주인공이 돼서 치르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6월 19일 김일성은 또 위장평화공세를 합니다. ‘남북 국회에 의해 통일정부를 수립하자’, ‘6월 21일 서울이나 평양에서 남북한 국회 대표들이 만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날 원주 6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귀순한 인민군 전사 박철호에게 ‘인민군 2사단이 함흥에서 야간행군으로 화천까지 내려왔고 일주일 후면 전면 남침이 시작된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육본에 보고합니다. 그러나 채병덕 총참모장은 인민군은 절대 도발하지 않는다며 또 묵살합니다.
다음날인 6월 20일 임영신 상공부 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합니다. 남침설로 뒤숭숭했던 3월부터 북한군 동태를 비밀리에 정탐하고 돌아온 김기희 등 요원 12명으로부터 ‘북한 전 지역은 비상상태이고 군용열차와 트럭의 남하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며, 외금강에서는 탄약을 공급하느라 기차가 밀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을 보고합니다. 그러나 신성모 국방장관은 허위사실이라며 이를 모두 배척합니다.
/조선일보 유튜브 '호준석의 역사전쟁'
22일에는 화천에 주둔한 6사단 7연대로 인민군 전사가 또 귀순해 ‘1개 대대의 전차가 화천에 집결하고 있다’고 알립니다. 임부택 7연대장이 직접 관측한 결과 못 보던 포 진지가 보이고 포신은 남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없던 차량 행렬도 관측됐습니다. 남침이 곧 시작될 것으로 판단하고 육본 정보국에 보고했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남침 하루 전인 24일 0시를 기해 13일간 계속돼 온 전군 비상경계령이 해제됩니다. 군은 5월1일 노동절 시위를 전후로 4월7일부터 26일간, 그리고 5월30일 2대 총선을 전후로 25일, 그리고 6월11일 조만식 선생과 이주하,김삼룡을 교환하자는 북한의 제의 이후 13일간 경계태세를 발령했습니다. 휴가가 통제된 상태에서 비상경계령 발령과 해제가 반복됐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자, 결국 전쟁 하루 전날인 24일 비상경계령을 해제한 것입니다. 많은 장병들이 몇 달 간 미뤄둔 휴가,외출,외박을 떠났습니다. 대부분의 부대가 많게는 3분의 2, 적게는 절반 병력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인민군 지휘관들이 모두 위장을 하고 38선 주변에서 지도를 들고 전방을 관측했습니다. 저녁 8시부터는 북한 공병대가 민간 복장으로 지뢰 제거와 교량의 폭파장치 조사에 나섰습니다. 24일 오후 2시 육본 정보국장 장도영은 옹진 17연대, 동두천 1연대, 춘천 7연대, 강릉 10연대 정보를 종합한 결과 전면 남침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채병덕 총참모장에게 ‘오늘 저녁이 위험하니 비상경계령을 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채병덕 총참모장은 오늘 새벽 해제한 경계령을 어떻게 다시 내리느냐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오후 3시 채병덕 총참모장 주재로 육본 참모들의 긴급회의가 열리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육본 국장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를 혼란시킬 작정이냐, 당신 빨갱이냐’라며 장도영을 질타했다고 합니다. 정보국 실무자들은 휴가과 외출 즉각 중지, 최소 3분의 2 병력의 부대 대기를 건의했지만 총참모장은 이를 거부하고, 첩보대를 포천,동두천,개성에 보내 정찰한 뒤 결과를 25일 아침 8시까지 보고하라는 지시만 내립니다. 6.25 남침 전까지 남침 첩보가 무려 417회 수집됐고, 수없이 많은 징후가 육본에 보고됐습니다. 그러나 이를 오판하거나 내용을 변질시킴으로써 남침에 대비할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6·25 발발 하루 전인 1950년 6월24일 당시 육본 정보국장 장도영은 북한의 전면 남침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채병덕 총참모장에게 ‘오늘 저녁이 위험하니 비상경계령을 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날 오후 3시 채 총참모장 주재로 육본 참모들의 긴급회의가 열리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육본 국장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를 혼란시킬 작정이냐, 당신 빨갱이냐’라며 장도영을 질타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유튜브 '호준석의 역사전쟁'
6월 24일 저녁 6시. 채병덕 총참모장, 최전방 사단장을 포함한 각급 지휘관, 육본 각 국,실장, 주한 미 고문단 50여 명이 육군참모학교 구내에 새로 만들어진 장교 구락부 개관 연회에 참석해 심야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채병덕과 육본 국,실장 10여 명은 2차로 명동 카바레에서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마침내 새벽 4시 김일성이 남측이 우리를 공격해 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인민군은 반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전투기 211대, 탱크 256대, 자주포 176대를 앞세운 파상공격이 38선 전역에서 시작됐습니다. 5시 10분 춘천 7연대 임부택 연대장이 총장 채병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부관 라엄광 중위는 총참모장이 잠을 잔다고 바꿔주지 않았습니다. 6시 육군본부 일직사령이 총장 공관으로 달려와 전면 남침을 알렸지만 술에 취한 육본 국장들이 어디 있는지 연락되지 않아 참모회의도 열 수 없었습니다.
오전 9시 반 채병덕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미 고문관 하우스만 대위와 함께 의정부에서 7사단장 유재흥 준장의 보고를 듣고 전면 남침을 확인합니다. 이미 전쟁이 시작된 지 5시간 반이 경과한 상태였습니다. 같은 시각 소장 방호산이 이끄는 인민군 6사단은 개성을 점령합니다.
10시 10분 휴일을 맞아 창경궁 비원 반도연못에서 낚시를 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신성모 국방장관을 질타하자 신 장관은 ‘반격해서 며칠 안에 평양을 향해 진격하겠다’고 말합니다. 긴급 소집된 국무회의에서 채병덕도 “전면 남침이 아니라 붙잡힌 공비 두목 이주하와 김삼룡을 살려내기 위한 책략 같으며, 부대를 즉시 출동시켜 반격하여 격파하겠다”고 보고합니다.
1950년 6월25일 오전 10시 10분 휴일을 맞아 창경궁 비원 반도연못에서 낚시를 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신성모 국방장관을 질타하자 신 장관은 ‘반격해서 며칠 안에 평양을 향해 진격하겠다’고 말합니다. /조선일보 유튜브 '호준석의 역사전쟁'
오전 10시 서울 도심 초동에 있는 수도극장, 훗날 스카라극장에는 외화 ‘애원의 섬’을 보려고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오전 11시 인민군 3사단이 포천을 점령합니다. 오후 1시 서울운동장에는 제3회 전국 대학 축구선수권대회 연세대와 고려대의 결승전을 보려고 만 명의 관객이 몰려 들었습니다.
이것이 통한의 남침 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 그리고 그 직전 대한민국의 상황입니다. 사흘 뒤인 28일 서울은 완전히 점령되고 그동안 국군 4만 4천명이 궤멸됩니다. 우리에게는 한 대도 없는 탱크와 전투기로 밀고 내려오는 적 앞에서 국군은 박격포와 수류탄, 맨주먹으로 장렬하게 맞서 싸웠고 어느 부대도 투항하지 않았습니다. 장병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나라는 기적적으로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군 수뇌부는 사치와 부패로 물들어 있었고 군은 교육과 훈련에 소홀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통합방위계획과 동원,전쟁연습은 정부 수립 후 한번도 없었습니다. 장비와 물자 보급도 빈약했습니다. 무엇보다 군 수뇌부의 오판이 가장 치명적이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13일 20명에 대한 중장급 진급 인사를 발표했습니다. 우리 군(軍)의 중장 정원 31명 중 20명이 교체된 겁니다. 최근 10년 이내 최대 규모의 중장급 인사로, 육군 6개 군단의 군단장이 모두 바뀌는 ‘역대급 물갈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12.3 비상계엄은 계엄사령관으로 지명됐던 사람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내려졌는데 군 장성들이 무슨 책임을 져야 한다고 국가안보의 초석을 모두 없애버립니까./조선일보 유튜브 '호준석의 역사전쟁'
대부분의 전쟁은 비합리적인 주체들의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에 의해 일어납니다. 전쟁 발발이 합리적 예측을 늘 벗어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국가와 군은 극히 낮은 가능성에 대비해 엄청난 자원을 투입하면서 만에 하나 일어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안보태세는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합니다. 한미연합훈련은 줄줄이 축소,연기됐습니다. 우리 군의 수뇌부인 합참의 장성 40명 전원, 그리고 2년 이상 근무한 중령, 대령까지 수백명이 역대급 물갈이가 된다고 합니다. 군 전체의 대장은 전원 교체됐고, 중장도 대대적 물갈이입니다. 12.3 비상계엄은 계엄사령관으로 지명됐던 사람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내려졌는데 군 장성들이 무슨 책임을 져야 한다고 국가안보의 초석을 모두 없애버립니까.
김정은 정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이며 호전적인 집단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핵폭탄을 갖고 있고, 남한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실제로 수많은 군사도발을 저질러 왔습니다. 우리는 ‘극히 낮은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1950년 그날에서 교훈을 얻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