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미술여행- 59] 필라델피아 미술관
필라델피아 뮤지엄 마일의 끝에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유서 깊은 미술관보다 더 인기가 많은 누군가가 있다는 겁니다. 언덕위의 미술관으로 오르는 미술관 계단이 그 유명한 ‘록키 계단’입니다.
1976년 영화 <록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훈련 장면 중 이 계단을 뛰어올라 만세를 부르는 명장면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된 곳이죠. 도시의 마천루가 한눈에 보이는 72개의 돌계단을 오르니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만세를 부르며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릴게임꽁머니 록키 발보아 동상과 필라델피아 미술관. ©김슬기
그리스 신전 같은 기부의 성지
초현실주의 100년 특
릴게임꽁머니 별전 ©김슬기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찾은 날은 손끝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습니다. 실내로 들어서자 미술관 가득한 인파가 주는 온기가 느껴지더군요.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미국 최대 규모의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미술관 주변의 조각 공원이 있었지만, 감히 엄동설한에 돌아볼 엄두가
바다이야기무료 나지 않을 정도로 면적이 넓었습니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을 모델로 삼은 웅장한 미술관은 1876년 미국 독립 100주년 박람회를 계기로 탄생했습니다. 박람회가 끝난 후에도 미술관은 펜실베이니아 박물관 및 산업미술학교로 계속 운영되었죠. 건국의 아버지들을 배출한 도시답게 150년간 부유한 후원자들의 기증으로 성장한 전
바다이야기룰 형적인 ‘컬렉션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24만점에 달하는 전체 소장품의 약 90%가 민간 기증자로부터 기증된 것이라고 하네요. 미국에서 사적인 부가 어떻게 공공 유산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일 겁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박물관답게 미국과 유럽 미술 외에도 동아시아 미술과 도자, 갑옷과 무기, 의상 등의 컬
바다이야기게임방법 렉션도 방대합니다. 가장 유명한 소장품으로는 새롭게 리노베이션된 남아시아 갤러리에 위치한 <춤추는 가네샤>가 있습니다. 모든 성공의 근원이자 가장 널리 숭배받는 힌두교 신을 대표합니다. 이 가네샤 조각상은 약 750년경에 만들어졌으며, 원래 힌두교 신 시바에게 헌정된 사원의 외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미술관은 최근에 난데없는 구설수에 오른적이 있습니다. 2025년 10월 사샤 수다(Sasha Suda) 관장 주도로 ‘Philadelphia Art Museum’(PhAM)으로 리브랜딩을 하려다 좌초당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술관에 먹칠을 한다는 광범위한 비판을 받았고, 수다 관장은 같은 해 11월 해임되고 맙니다. 짧은 네이밍 쿠데타의 실패 이후 올해 2월 원래 이름이 복원됐습니다. 우습고도 교훈적인 사연입니다.
레오노라 캐링턴 [다고베르트의 구역], 1945 ©김슬기
제가 찾은 날은 많은 시민이 줄을 서서 입장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초현실주의 100주년>이었습니다. 2024년 가을 파리에서 보기 시작한 전시가, 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긴 여행 끝에 미국까지 와 있더군요.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본 작품 몇 점이 보이긴 했지만, 미국이 소장한 작품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된 전시였습니다. 어느 초현실주의 전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단골 손님인 막스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의 승리>는 역시나 여기서도 볼 수 있더군요.
미국 전시에서 특별히 많은 비중을 할애한 두 작가는 레오노라 캐링턴과 레미디오스 바로였습니다. 예전에 경매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는 레오노라 캐링턴의 <다고베르트의 구역>(1945)을 실물로 만났습니다. 2024년 소더비 경매에서 2850만 달러(약 386억 원)에 낙찰되면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신비주의와 켈트 신화가 융합된 작품입니다.
캐링턴의 멕시코 이주 후 완성된 대표작으로, 불타는 나무, 상상 속의 생물, 7세기 프랑크 왕국의 다고베르트 왕을 묘사해 지상의 쾌락과 종말론적 분위기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함께 전시되는 바로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멕시코로 이주한 화가인데요. 유럽의 전쟁을 피해 멕시코로 이주한 두 화가는, 공동적으로 꿈과 몽환적 세계를 반인반수 등 독창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며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여성 중심의 환상성이 넘실대는 서사는 이들이 왜 21세기에 주목받는지 한 눈에 알려주더군요.
황금의 다이애나상이 필라델피아에 온 사연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상징인 황금의 다이애나상. 1월이라서 다행히 성탄 장식을 볼 수 있었다. ©Philadelphia Museum of Art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서 서면 압도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기둥이 도열해 있고, 꽤 높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끝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조각이 보입니다. 그레이트 스테어홀의 주인공 다이애나 조각입니다. 미국 조각가 어거스터스 생고든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죠.
원래 1893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타워의 풍향계로 설치된 이 동상은 1932년에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2013-14년에 박물관 보존가들은 조각상을 원래의 금박 마감으로 재도금했는데요. 덕분에 미술관을 대표하는 얼굴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대계단 홀은 마침 연말이라 화려한 꽃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요. 미국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정말 진심이더군요. 발코니 층에는 1625년 루이 13세가 프랑스의 루이 13세가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에게 선물한 피터 폴 루벤스의 7점의 태피스트리 연작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역사>로 눈길을 끕니다.
언제나 북적이는 19세기 유럽 갤리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팝업 전시로 줄리 머레투의 대형 신작을 설치해 놓은 거였죠. 미술관의 소장을 기념하며, 머레투의 대작 2점을 소개하는 공간을 만든 건데요. 마치 백화점의 신상 코너처럼 가시성이 좋아서, 영리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폴 세잔 [큰 목욕하는 사람들] ©김슬기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김슬기
유럽 갤러리의 면면은 꽤나 화려합니다. 클로드 모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베르트 모리조, 빈센트 반 고흐 등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동선의 끝에 탁트인 홀에 높이 걸린 작품이 폴 세잔의 <큰 목욕하는 사람들>입니다. 1906년 작가 사망 전까지 약 10년간 작업한 기념비적인 후기 인상주의 유화로 기하학적 형태, 색면, 누드 형상의 조화가 최고조의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피카소 등 현대 미술과 입체주의에 깊은 영향을 준 거장의 최후의 걸작이죠. 세 점의 연작 중 미완성 버전으로 평온함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바로 아래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민트색 <해바라기>(1888 또는 1889)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캐럴 S. 타이슨 주니어 부부의 기증으로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1888년 아를에서 폴 고갱이 합류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빈센트 반 고흐는 해바라기 장식용 정물화 다섯 점을 그렸는데 지금은 모두 큰 사랑을 받으며 전 세계에 흩어져 있습니다. 2024년 가을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두 해바라기의 조우를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밖에도 클로드 모네 <일본식 다리와 수련 연못, 지베르니>(1899), 앙리 툴루즈로트렉 <물랭 루주: 댄스>, 에드가 드가 <14세의 어린 무용수>, 메리 카사트 <모성의 애무>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사이 톰블리 [일리암에서의 50일] ©김슬기
현대 미술 컬렉션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두 작가는 마르셀 뒤샹과 사이 톰블리로 보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마르셀 뒤샹 컬렉션을 소장한 곳인데요. 특히 소장품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1912)는 1913년 아모리 쇼에서 뒤샹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큐비즘-미래주의 대표작품이죠.
1950년 월터·루이스 아렌스버그 부부의 기증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미술관은 2022년 퐁피두 센터, 마르셀 뒤샹 협회와 공동으로 뒤샹 연구 포털을 출범시켰고, 올해 10월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와 공동 기획한 대규모 뒤샹 전시가 필라델피아로 순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185번방을 홀로 쓰는 사이 톰블리는 1978년에 완성된 <일리암에서의 50일>이라는 10점의 연작을 방 가득 설치했습니다. 알렉산더 포프가 번역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를 특유의 자유분방한 낙서 같은 그림으로 옮겼죠.
이 미술관의 쟁쟁한 기부자들의 이름 중에서 유독 존경 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존 G. 존슨은 대장장이의 아들에서 미국 최고 기업 변호사로 성장한 인물입니다. 그는 수집한 보티첼리, 히에로니무스 보스, 티치아노, 렘브란트, 모네 등을 포함한 약 1,300점의 회화, 51점의 조각은 유언으로 자택과 함께 이 도시에 기증됐고, 미술관으로 이전됐습니다.
그는 특별히 헨리 오사와 태너의 <수태고지>를 매입하는 데 관여했는데, 이 작품은 미국 공공 컬렉션에 들어간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화가 작품이 됐습니다. 많은 수태고지를 봤지만, 이 작품처럼 현대적인 해석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네요. 태너는 1897년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여행 후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헨리 오사와 태너의 [수태고지], 1897 ©Philadelphia Museum of Art
피 흐르는 해부학 강의에 왜 이렇게 열광해?
토머스 에이킨스 [그로스 클리닉], 1875 ©Philadelphia Museum of Art
유럽의 미술관에 익숙해진 저에게 가장 신기한 공간은 다채로운 미국 미술 컬렉션이었습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 화가들과 함께 제임스 맥닐 휘슬러, 존 싱어 사전트의 보기 드문 소품이 눈에 띄더군요.
무엇보다도 이곳은 자랑스러운 필라델피아 출신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1844~1916)의 세계 최대 컬렉션을 보유한 곳입니다. 대표작 <그로스 클리닉>(1875)은 미국 회화사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데요. 거대한 그림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해부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2006~2007년 토머스 제퍼슨 대학교가 매각을 결정했을 때 50개 주 3,600명의 기부자가 참여해 6,800만 달러를 모금하여 필라델피아에 잔류시킨 일화가 무척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도시의 상징이 된 작품이랄까요. 덕분에 이 작품은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PAFA)가 5년 교대로 전시되는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당시 젊은 무명 화가였던 이킨스는 1876년 필라델피아 100주년 박람회를 위해 특별히 이 작품을 고향 필라델피아의 과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그렸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과의사 새뮤얼 그로스 박사를 주제로 삼아 제퍼슨 의과대학의 외과 원형극장의 수술을 재현한 거죠.
칠순이 넘은 그로스 박사는 환자의 왼쪽 허벅지를 수술하는 다섯 명의 의사로 구성된 수술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물러나는 여성(전통적으로 환자의 어머니로 인식되는 인물)과 달리, 그로스는 지식과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을 구현합니다. 증인으로 자신을 내세우며, 이킨스는 터널 난간 오른쪽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이들을 뚫어지게 보며 스케치를 하고 있죠.
당시 화가의 야심만만한 계획은 박람회 심사위원단이 이 그림이 너무 피비린내 나고 잔혹해서 미술관에 전시하기에는 적합하다고 판단하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그림은 대신 미군 야전병원 모형 전시에 등장했는데 이 그림의 사실적 묘사는 관객들에게 충격을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추하고 비예술적인 사실주의에 거부감을 느낀거죠.
하지만 당시 한 미술 평론가는 1876년 6월 16일 필라델피아 이브닝 텔레그래프에서 “전시회 미술부 미국 섹션에는 이토록 훌륭한 작품이 없으며, 선정 위원회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작가가 미국 병원 건물에 자리를 찾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그림이 훗날 얻게 될 영광을 일부 비평가만이 미리 예감했던 것 같습니다.